지난 4월16일 오후 서울 중구 퇴계로 세종호텔 입구에서는 이 회사에서 22년을 일한 조주보씨(46)가 근무 중이었다. 세종호텔 앞에서는 노조원 두 명이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홍보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노조원들은 조씨에게 비가 와 손이 시리니 입구 근무자들이 끼는 면장갑을 좀 달라고 했다. 500원짜리 1회용 면장갑이었다. 조씨는 입구 옆 보관대 서랍을 열어 면장갑 두 켤레를 꺼내 노조원들에게 건넸다.
지난달 20일 조씨는 호텔 측으로부터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다. 징계처분통지서란 사유 1번에는 ‘회사비품을 회사 승인 없이 무단으로 나눠줬다’고 쓰여 있었다. ‘회사비품’은 그 면장갑 두 켤레였다.
징계 사유 2번은 두 차례에 걸친 무단 결근이었다. 지난 5월4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예고 없이 휴업을 하게 되자 조씨는 상급자에게 근무를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 관례상 이뤄지던 일이었다. 그러나 상급자는 조씨의 요청을 거절했다. 고의적으로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행위라고 판단한 조씨는 4일 출근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한 차례의 무단결근은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사후 연차 휴가 신청을 회사가 받아주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조씨는 10일 “두 건 모두 내가 노조 간부가 아니라면 문제되지 않았을 일”이라며 “사측의 정직 처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씨는 1993년 벨맨으로 호텔 일을 시작했다. 1년쯤 지나 프런트로, 2005년엔 판매촉진팀으로 옮겨갔다. 노조는 1994년 가입했다. 당시 호텔에는 큰 노사갈등이 없었다. 노사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세종대 재단 공금 113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2004년 물러났던 주명건 전 이사장이 2009년 세종호텔 회장으로 돌아오면서부터다. 2010년 노조법 개정으로 2011년 7월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자마자 사측에 우호적인 ‘제2노조’가 생겼다. 사측은 갑자기 소수가 된 기존 노조와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노조간부들을 근무 경험이 없는 부서로 전보조치했다.
회사의 정직 처분에 조씨는 재심을 청구했다. 11일 세종호텔 상벌위원회는 재심을 연다. 세종호텔 측 관계자는 “(면장갑) 가격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고 회사비품을 무단으로 줬다는 것이 문제”라며 “회사가 노조간부라고 차별대우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